벌써 몇 년도 훌쩍 더 지난 이야기이지만, 나는 모 화장품 브랜드의 캠페인 모델로 발탁(?)된 적이 있다. 뷰티 브랜드에서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일반인을 모델로 섭외하는 건 흔히 있는 일이지만 나에게도 그런 기회가 생긴다는 건 개인에게는 놀랍고도 즐거운 경험일 수 밖에 없다.
스튜디오의 분주하고도 뜨거운 분위기, 도착해서 메이크업을 받고 헤어와 네일을 다듬어주시느라 나 하나만 붙들고 바쁘게 움직여주시던 스탭 분들. 나는 그저 의자에 앉아있기만 하면 되었다. 머리카락 한 두 가닥이 눈썹을 찔러 살짝 얼굴을 찌푸렸을 뿐인데 "혹시 어디 불편하신데 있으시면 말씀해주시겠어요?" 라고 말하는 친절함까지. 그랬다. 나는 적어도 그들이 그냥 과하게 친절한 것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 당시에 캠페인을 함께 진행한 모델도 함께 있었는데 나중에 듣고보니 그때 한창 방영했던 관련 프로그램에서 깨나 인기를 얻은 사람이었다. 나는 워낙에 텔레비전과는 담을 쌓고 지낸터라 잘 모르기는 했지만 그래도 전문 모델이고 같이 촬영한 기념사진이라도 남기면 좋겠다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그녀와 그녀의 촬영 태도로 인해 그 맘을 고쳐 먹었다.
나와 인사할 때까지만 해도 전문적인 포스를 뿜어내며 카리스마 넘치던 총괄 에디터는,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웃으며 맞장구쳐 넘기느라 정신없이 바빠보였다. 와중에 그녀는 계속 반말로 이야기했고 나는 그 점이 매우 신경 쓰였다.
촬영 중간중간 옷 매무새를 점검할 때도, 손에 묻은 화장품 자국을 닦아내는 것 같은 충분히 스스로 체크 할 수 있는 일들도 스탭 서너명이 와서 내가 손 하나 까딱할 일이 없게 해줬다. 나 개인을 배려한 것이라기보다 신속하게 촬영을 지속하게 하기 위해 편의를 봐준 것임을 알면서도 황송했다. 그리고 그 너머로 기분탓이었을까 거만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기대 서서 손가락질하며 의상을 체크하는 모델이 보였다. 나는 아마 앞으로도 그녀의 팬이 될 일은 없을 것이다.
최근 모 아이돌 아이린 이 인성 논란, 갑질 논란으로 이슈가 되었다고 들었다. 연예계란 들여다보고 있으면 참으로 요지경 세상이고 그들만의 리그인가 싶을 때가 많다. 15년차 에디터가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는데 그 폭로글을 읽으면서 몇 년 전 촬영장에서 있었던 일들이 떠오른 것은 왜일까.
사람은 타인의 존재로 말미암아 끊임없이 스스로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또 쉽게 거만해지는 존재다. 연예계라는 특수한 환경과 인기 아이돌이라는 권력 아래 팬들의 무한한 애정과 한없는 동경을 한 몸에 받으면서도 거만해지지 않으려면 노력이 필요할 것임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인성 논란, 갑질 논란이 해당 논란 아이돌인 아이린 측에서 공식적인 사과를 한 것으로 보면 더 이상 논란이 아닌, 확인된 사실이라는데 마음이 편치 않다. 말 그대로 팬들의 사랑을 돈 벌어 먹고 사는 연예인이라면, 속은 둘째치고 겉으로라도 늘 바르고 좋은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이미지메이킹의 최우선 과제는 아닐까? 하필이면 그룹의 활동 컴백을 앞두고 큰 피해를 끼치게 되었는데 활동해 온 지난 몇 년간 언젠가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면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설마 그것도 컨셉이라고 쉴드칠 수 있다면 멘탈 갑...
팬들의 무한한 사랑과 지지를 얻어 지금의 위치에 서 있을 수있다는 것을 안다면, 반대로 팬이 없다면 연예인 또한 존재할 수 없다는 말과도 같다. 잊을만 하면 한 번씩 수면 위로 떠오르는 인성 문제, 갑질 문제는 비단 특정 연예인 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연예인에게 이미지는 곧 그의 전부나 마찬가지이다. 가장 철저하고 좋은 이미지 관리는 곧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다. 어설프게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많은 팬들이 연예인이 보여주는 모습으로만 연예인을 바라 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팬 기만이 아닐까. 가짜를 원하는 팬은 그 어디에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