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전문가가 아니며 부모마다 그리고 아기마다 다른 육아 방식을 존중한다. 아래의 내용은 철저히 나의 개인적인 경험과 주관적인 의견임을 미리 말씀드린다.
신생아는 잘 잔다. 아니, 정확하게는 잠만 잔다. 병원과 조리원에 있는 동안 아기를 틈틈히 품에 안았지만 아기는 함께 있는 시간의 95% 는 눈을 감고 쿨쿨 자고 있었다.
먹는 시간을 제외하면 하루 온종일 잠만 자는 신생아. 사실 이 시기에는 잠에서 깨어 있다고 하더라도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한다. 안구 주변 근육의 발달이 덜 되어 있는데다 아직 초점을 맞추지도 못하고, 세상이 온통 흑백으로 구분된다. 시야범위도 좁다.
아기는 대개 한 시간에 한 번 정도 배가 고파 칭얼거리면서 깨어서 울지만, 거의 대부분 수유 도중에 다시 곯아떨어진다. 조리원에 있는동안 모자동실 필수 시간이 2시간(해당 시간동안 신생아실을 청소 맟 소독하기 때문)이었는데 아기와 눈맞춤을 할 수 있었던 시간을 다 합해도 삼십분이 될까말까 할 것 같다.
아기는 조리원을 나와 집으로 가는 카시트에 타서도 쿨쿨 잘 잤다. (알다시피 병원이나 조리원이 바로 집 옆에 있다고 할지언정 아기를 데리고 차에 탄다면 무조건 카시트는 필수 사항이다. 아기띠 안된다. 안고 타는 것도 안된다. 간혹 안 타려고 우는 아기도 있다던데 울어도 어쩔 수 없다. 지킬 건 지키자. 이 때 부모가 지키는 건 도로교통법 이전에 아기의 안전이다) 명심하자- 안전제일.
아기는 집에 와서도 잘 잤다. 매일같이 종일 잠만 자는 아기를 돌보고 있자니 이래도 괜찮나 싶은 마음도 스물스물 들었다. 우리 아기는 배고플 때를 빼면 거의 울지도 않았다. 기저귀는 색깔이 변하는 것을 보고 바로바로 바꿔주었다(아기는 배변을 할 때는 힘을 주기 때문에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주면 표정 변화와 소리로 알 수 있다. 배변을 한 뒤엔 기저귀가 축축해지므로 보통 발을 차며 찡얼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불편해한다)
우리 부부는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간격으로 아기에게 분유를 먹였고 아기는 분유를 먹을때가 아니면 거의 잠을 잤다. 이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이거 완전 날로 키우는 거 아닌가?
어떤 사람들은 신생아 시절부터 수면교육을 시킨다고 들었다. 고작 신생아에게 무슨 수면교육이 필요하겠느냐는게 애시당초 우리의 생각이었다. 우리 아기는 이미 이렇게 잘 자는데.
우리 부부가 아기 수면교육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아기는 태어나기 직전까지 따뜻한 자궁에서 모든 욕구가 즉각 충족되는 편안한 상태로 지냈음 -> 출생 시 강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고 작은 체구로 외부의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스트레스도 클 것 2) 아기의 행동은 철저하게 본능적인 반사, 반응 위주임. 대부분 시간동안을 자면서 보내고, 배고플 때 깨고 먹고(먹으면서) 잠 -> 아직 습관을 통한 교육은 어려운 상태일 것
다만 점차적으로 낮과 밤을 구분하는 시기가 찾아오기 전에 환경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느끼게 하면 좋을 것 같아 낮과 밤에는 다른 수면 환경을 조성해주자는 데 동의했다.
우리는 아기를 데리고 집에 온 첫 날부터 텔레비전을 켜지 않았다(안 봤음). 미디어 노출을 떠나서 불빛이 강하고 번쩍거림에 아기가 자극을 받을까봐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아기와 함께 쓰는 안방의 커튼은 열어두되 조명은 켜지 않고 작은 수면등만 켜서 아기가 자연스럽게 어둠을 인식할 수 있게 해주려고 했다. 낮에 자더라도 그 시간대는 일상 생활 시간인 만큼 어느 정도 발생하는 소음에 적응할 수 있도록 집이 너무 조용해지지 않게 했다. 날마다 낮에 까치발 들고 다니며 살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낮에는 자극에 무난하게, 밤에는 최대한 자극이 없게 수면환경 을 만들어주는 것만 하기로 했다.
어쨌거나 아기는 생후 30일을 기념한다고 사진을 찍던 날도 잤다. 우리는 평화로웠다. 아기의 기질이 순해서 그런가보다고 생각했다. 안그래도 게우는 게 심한 편인데 잠이라도 잘 잤으면 싶어 자는 아기는 눈으로만 볼 뿐이었다. 물론 아기는 순한 것과는 별개로 손이 많이 가는, 돌봄이 필요한 존재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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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30일이 지나고 그 다음날부터, 거짓말처럼 모든 평화가 와장창 깨져나갔다. 아기는 잠을 자지도 않고 심지어 먹지도 않았다. 하루에 못해도 700ml는 먹었는데(물론 절반은 게웠을거다) 이 시기에는 300ml도 채 먹지 않았다. 정확히는 먹기를 거부 했다. 칭얼거리고 짜증을 내듯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고, 용을 쓰며 온 몸에 잔뜩 힘을 주고 온종일 울었다.
달래려고 어르고 안아주고 토닥이고 별 짓을 다해도 아기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이렇게 얌전히 코오오 잘 자던 때가 그리워졌다. 아 옛날이여-
그나마 계속 품에 안고 있으면 진정이 되는 편이라 나는 그렇게 아기를 안은 채로 돌처럼 굳었다. 우리 아기는 이 무렵에 두시간에 한 번씩 분유를 먹였다. 삼십분 걸려 트름을 시키고도 뉘일 수가 없었다. 아기띠를 메고도 꼬옥 안아주고 토닥토닥 해줘야만 아기는 겨우 눈을 붙였다. 어깨가 아파 아기를 내려놓을까 싶어 몸이라도 조금 숙일라치면 그 기색을 어찌나 칼같이 알아차리고 잠에서 깨는지 놀라울 지경이었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 거의 하루 종일 아기를 안고 있다 시피 했다. 심지어는 버티다 못해 내가 잠이 들 때에도 아기를 안고 잤다.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침대나 쇼파에 기대어 아기를 안고 토닥이다 그 상태 그대로 먼저 잠들어버리기도 했다. 아기는 한동안 그렇게 품에서만 잠을 잤다.
매일 울었다. 정말 매일 울었음.
원더윅스, 흔히 급성장기 라고 부르는 시기에 유독 아기들이 떼쓰고, 울고, 잘 먹지 않거나 잠을 자지 않는 증상이 심한 것 같다. 아기는 생후 한 달을 먹고 자고 하면서 급격하게 성장한다.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급속한 성장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당연히 성장통이 극심할 수밖에 없다. 우리 아기 돌려줘 적어도 우리 품에서는 조금이라도 진정이 되고 안정을 찾는데, 어떻게 품에서 내려놓을 수 있겠는가. 부모 또한 사람이니 이 시기가 엄청나게 체력적, 정신적으로 힘들다. 일단 아기가 이유없이(이유가 있기야 하다. 유년시절 성장통을 한 번이라도 겪어본 사람이라면 공감할듯) 우는 것을 달랠 수가 없으니 옆에서 보자면 마음이 아파도 너무 아프다.
나도, 남편도 적잖이 맘 고생을 했던 것 같다. 보통은 이 시기에 주변에서 자꾸 안아주지 말라 고 말한다. 등센서 민감도가 높아진다, 매일 안아서 재워야 할 거다, 습관되면 품에서 못 내려놓는다 등등-
그럼에도 우리는 매일 안아줬다. 배 맛사지를 해주고, 팔다리를 주물러주고, 등을 토닥토닥 해주고,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주기도 하고. 이 시기에 부모와의 신체접촉은 아기에게 안정감을 준다. 실제로 스킨십은 세로토닌을 분비시켜 통증 완화에도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열 달 동안 엄마의 따뜻한 자궁 속에서 아기의 인생(?)은 완벽 그 자체였을 것이다. 배고플 일도, 아플 일도 없이 엄마의 심장소리와 아빠의 낮은 목소리를 들으며 포근하게 잘 지내고 있었을거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숨 쉬는 것부터 알아서 혼자 해야 한다니 우리로 따지면 평생을 육지에서 살았는데 바다에 퐁당 빠뜨려놓는거나 마찬가지는 아닐까(비유가 그렇다). 출산하는 산모도 고통과 어려움을 겪지만 아기 또한 출생 과정에서 고통을 겪는다. 처음 찾아오는 성장통은 그동안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애쓰고 노력한 이 작은 몸으로 이겨내야 하는 새로운 고비인 것이다. 이 시기를 부모의 품에서 잘 넘기면, 분명 아기는 부쩍 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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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는 하루가 다르게 날마다 자란다 는 말을 실감한다.
어쩌면 아기에게도 수면교육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 어떤 아기들은 빠르게 잘 적응해서 규칙적인 수면패턴을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삼십 년을 넘게 살아온 나도 규칙적으로 자고 일어나려면 시계를 봐야하고 알람을 설정하는데, 이제 막 태어난지 몇 달도 되지 않은 아기에게 저절로 잘 자고 제 때 일어나주길 바라는 것은 크나 큰 욕심이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신생아 시기는 더더욱 그렇다. 어차피 원더윅스를 지나면서 초기화 될 수 밖에 없음.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가 되고 싶지는 않아서 아기에 관한 여러가지 내용을 알아가려다보니 아기 수면교육에 관해서도 알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우는 아기를 그냥 지켜보고 둬야 하는 상황이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나는 아기 수면 교육은 하지 않기로 했다. 앞서 적은 대로 대신 아기가 좀 더 편안하게 잘 수 있는 수면 환경만 만들어 줬다. 손 탄다한들 뭐 어때서. 열 달 품은 정성으로 아기가 부모의 품을 찾는만큼 원하는 대로 실컷 안아주자는게 내 생각이다. 아기가 부모 품에서 안정을 찾고 친밀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닐까?
실컷 안아주자. 막 출산을 하고 돌아오지 않은 몸과 체력으로 그것이 어렵다는 것도 알고 힘들다는 것도 안다. 무리가 덜 가는 자세로, 아기띠의 도움을 빌려서라도 안아줄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안아주리라 다짐했고 그렇게 하는 중이다. 그것이야말로 가장 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장 위대한 부모의 역할이다. 춥고 차가운 세상에, 언제고 자기를 안아주는 따뜻하고 포근한 품이 있다는 것을 알고 깨닫게 되면 아기는 본능적으로 용기를 얻을 것이다. 우리 아기는 요즘 낮잠도 잘 자고 밤에도 길게 잘 잔다. 아기의 평생을 놓고 보면 이렇게 품 안의 자식 으로 키우는건 정말 순간이나 마찬가지다. 지나고나면 더 안아줄 걸 아쉬움이 남을지도 모른다.